[에프워드] 그림자 밖으로 꺼낸 ‘○○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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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민종 작성일26-06-19 12:23 조회0회 댓글0건본문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이 친밀한 관계 속으로 가려졌을까? 얼마나 많은 탁월한 여성이 남성 연인의 성취 뒤편에 남았을까? 이번 [에프워드]는 누군가의 ‘아내, 연인, 뮤즈’로 줄곧 언급되던 여성들을 그들 자신의 이름으로 조명했다. 이들에 관한 기록과 발굴, 재발견은 대부분 수십 년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세상에 나왔다. 어쩌면 너무 늦은 시도일지 모른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고 1934년에는 <세기말, 1984>라는 제목의 디스토피아적인 시를 발표했던 젊은 여성. 두 번이나 동료들을 조직해 폭력적인 상사들에게 저항했던 사람.’
아일린 오쇼네시는 친구의 파티에서 만난 에릭 블레어와 1936년 결혼했다. 이후 아일린은 남편의 글쓰기를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했고, 남편이 파시스트와 싸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달려가자 자신도 몇 달 뒤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반파시스트 단체에서 일하며 병참, 영어 뉴스 제작, 우편물 관리 등의 일을 도맡아 했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 전선으로 찾아가기도 했고, 그가 총상을 입자 즉시 달려가 간호했다. 정국이 불리하게 흘러간다는 점을 포착한 뒤로는 정보와 인맥을 총동원해 스탈린의 스파이로부터 남편을 구해 영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남편 에릭 블레어는 <동물농장>, <1984>, <카탈로니아 찬가> 등을 쓴 작가 조지 오웰이다.
인권변호사 출신 작가 애나 펀더는 조지 오웰의 전기를 주변인이 남긴 기록 등과 교차하며 읽는 과정에서 의아함을 느낀다. “아일린은 오웰의 전기 속에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아일린이 이렇듯 오웰의 삶과 성취 곳곳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오웰이 생전 남긴 글에서 그의 이름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애나 펀더는 책 <조지 오웰 뒤에서>를 통해 오웰과 공교롭게도 모두 남성이었던 그의 전기 작가들이 ‘숨긴’ 아내 아일린을 발굴해냈다. 아일린이 절친에게 보냈던 편지 여러 통이 사후에 추가로 발견된 것도 도움이 됐다.
아일린에 관해 새로 알려진 사실로는 위에서 언급된 행적이 대표적이다. 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아일린을 이름 대신 “아내”라고만 37차례 언급할 뿐이다. 아일린이 반파시스트 단체의 본부에서 일했고, 자신을 만나러 전선까지 왔고, 여권과 허가증을 확보해 자신을 구해냈다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밖에도 펀더는 애초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는 에세이를 쓰려고 했던 오웰에게 동물이 등장하는 우화를 써보라고 권한 것이 바로 아일린이라는 설을 제기한다. 부부가 나치의 폭격이 한창이던 런던에서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애나 펀더는 “<동물농장>은 아일린의 정신적 깊이와 공감 능력이 오웰의 정치적 통찰과 만나 탄생한 걸작”이라고 평한다.
아일린 오쇼네시와 달리 밀레바 마리치는 남편과 같은 학교에서 같은 전공을 공부하며 만났다. 그의 남편은 천재, 노벨상 수상자,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과학자로 기록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밀레바 마리치와 아인슈타인은 대학 시절부터 교제를 시작해 1903년 결혼했고 두 아들을 뒀다.
주목할 지점은 밀레바 마리치가 아인슈타인과 동일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둘은 1896년 취리히공대 물리학-수학부에 함께 입학했다. 같은 수업을 들었고, 같은 과제를 고민했고, 같은 주제로 토론했다. 이들이 학생 시절부터 주고받은 편지가 1986년 발견되면서 밀레바 마리치의 존재가 발굴되기 시작했다. 둘의 사망으로부터 약 30~40년이 지나서였다.
편지와 주변인들의 기록, 전언 등을 바탕으로 일각에서는 밀레바 마리치가 뛰어난 수학·물리학 실력을 바탕으로 아인슈타인의 연구에 공헌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1900년 9월 밀레바에게 편지를 써 “우리의 새로운 공동 작업을 다시 시작할 날을 고대한다”고 했고, 1901년 3월에는 “우리 둘이 함께 상대 운동에 대한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면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울까”라고 했다.
마리치의 삶을 추적한 책 <아인슈타인의 그림자>는 아인슈타인이 생전 모임에서 “나는 아내가 있어야 해요. 아내는 날 위해 모든 수학 문제를 풀어줘요”라고 말했다는 지인들의 기억을 전했다. 아인슈타인이 취리히공대에서 교수직을 맡았을 때의 첫 강의 노트, 아인슈타인이 연구소에 보낸 답장 등이 밀레바의 필체로 쓰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밖에도 마리치의 학업 성취도와 지적 수준을 짐작케 할 수 있는 근거는 꽤 남아 있다.
아인슈타인에게 밀레바 마리치는 무엇이었을까? 공동 연구자였다고 주장하기는 분명 어렵다. 아인슈타인의 발언 또한 아내를 향한 칭찬과 존중의 의미일 뿐, 연구 기여를 뜻하진 않는다고 볼 여지도 있다. 안전한 수준으로만 서술하자면, 마리치는 남편의 조력자이자 조수이자 배우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아일린과 밀레바의 영향은 드러나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선 남성 위인을 다룬 전기라는 장르 자체의 시선이 남성적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여기서 남성적 시선이란 여성 연인이나 아내의 역할을 정서적 뒷받침, 가사와 생계 등의 이상으로 확장해 의미를 부여하면 남성의 성취에 흠이 된다는 관점을 뜻한다. 애나 펀더는 이렇게 지적한다.
“남성 중심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떠받치는 존재가 반드시 보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 공중 줄타기에서 와이어가 보이면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보이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아내는 줄을 타는 그 행위를 하늘로 솟구치게 해주는 실질적인 와이어이며, 종종 지적인 와이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행위가 정말로 놀라운 일이 되기 위해서는 와이어도 아내도 지워져야 한다.”
지적 교류를 포함해 배우자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오웰과 아인슈타인은 특별히 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는데, 아일린 오쇼네시와 밀레바 마리치는 당대 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남성도 받기 힘든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일린이 1927년 졸업한 옥스퍼드대학은 1922년에야 여성에게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다. 아일린은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심리학 석사 공부까지 했다. 세르비아 태생 밀레바는 여학생이 물리학 수업을 들으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던 환경에서 자랐고, 아인슈타인과 함께 입학한 동기 5명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당시 아무리 고학력 남성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원고를 대신 정리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아내, 수학과 물리학에 관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아내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귀했음에도 이들의 재능은 ‘시대적 전형성’ 안에 갇혔다. 아일린과 밀레바는 그 시대 여성답게 아내의 역할을 수행했고, 남편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그 시대 남성답게 오웰과 아인슈타인은 아내의 재능을 밀어주지 않았다. 오웰은 여러 차례 불륜을 저질렀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사촌과 불륜 후 재혼했다. 이 역시 전형적인 서사일 것이다.
아일린과 밀레바가 불행했으리라 단언할 수는 없다. 이들은 어쨌든 남편을 사랑했고, 현대의 기준으로 과거의 삶을 짐작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는 건, 그들을 가린 그림자 속에 더 많은 실체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 그림자는 너무도 길고 자연스럽게, 방대하게 여성들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다.
“나에 대한 반감은 적어도 세 종류입니다. 반아시아, 반페미니즘, 반자본주의적 반감이지요. 다들 이렇게 말해요. 저 늙은 여자를 봐라. 저 돈 많은 과부를 봐라.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 오노 요코의 1998년 발언. <(마녀에서 예술가로) 오노 요코> 중에서
여성을 완전히 가려버린 그림자가 존재하는 한편, 여성의 일부 모습만을 드러내 주는 그림자도 있다. 남성 연인과의 관계가 어느 한쪽으로 흡수된 형태는 아니었으나 일반 대중의 인식 속에는 ‘누군가의 연인’, ‘○○의 그녀’라는 표현이 선행하는 여성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성과 사상은 누군가와의 관계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마지막 동반자였던 오노 요코가 대표적이다. 오노 요코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미국과 영국 등에서 활동한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다. 그는 1960년대 초부터 불던 전위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s)’의 일원으로 커리어를 쌓아올렸다. 1965년에는 한 행사에 앤디 워홀, 백남준 등과 함께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1966년 존 레논과 가까워지고 두 해 뒤 가정을 꾸리면서 그를 향한 세상의 시선이 바뀌었다. 가장 대표적인 건 비틀즈 불화의 원인이 돼 끝내 ‘비틀즈를 해체시킨 마녀’라는 오명이다. 비틀즈는 1970년 해체했다. 일본인, 여성, 난해한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라는 이미지가 겹치며 요코는 해체의 주범으로 지목받았다. 당시 영국 언론은 “요코는 전세계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 “비틀즈 멤버를 훔쳤다”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밴드 해체로 상심한 비틀즈 팬덤의 화살도 그에게 쏠렸다. 1980년 존 레논이 피살된 이후에는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는 비난이 추가됐다. 그가 처했던 공격은 아시아인-이혼 유경험자-여성이라는 약자성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 시절 오노 요코는 그저 한 개인이 아닌 일종의 사회 현상이었다.
존 레논이 사망한 지는 이제 46년이 지났다. 오노 요코도 94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반세기 전 급류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예술가로서 오노 요코에 대한 재조명은 그간 조금씩 이뤄져 왔다.
중요한 점은 그가 평화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이다.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1967년 8월 3일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사자상은 흰 천으로 뒤덮였다.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기념상이 세워진 트라팔가 광장은 그 자체가 전쟁 승리를 상징하는 장소다. 오노 요코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 그곳의 사자상을 덮어버리고 쇠사슬로 자신의 몸을 사자상에 묶어버렸다. 여성이, 그것도 아시아에서 온 여성이 런던의 심장부에서 전쟁과 남성의 상징에 반기를 든 셈이다.
오노 요코는 1968년 인터뷰에서 “여자는 세상의 흑인이다(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라고 발언했고, 이어 같은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금기시되는 표현(N-word)을 동원함으로써 여성이 착취당하는 집단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가 레논과 잠깐 결별했던 시기 발표한 앨범에는 ‘분노하라 젊은 여성들이여’란 곡이 실리기도 했다. 그는 “나는 모든 여성에게 감탄한다. 여성은 모두가 근본적으로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여성혐오적이고 인종적인 편견에 맞서온 오노 요코의 일생 동안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
“어떠한 개성에도 다른 개성을 흡수해버릴 권리는 없다. 박열이 그의 길을 가는 것처럼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자신의 세계에서는 자신이 절대자이다.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곧바로 걸어가기 위해서 나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가네코 후미코,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제국의 아나키스트>에 실린 재판기록 중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남편이자 동지였던 조선인 박열과 자신과의 관계를 이렇게 진술했다. 그는 제국주의와 천황제를 비판한 일본인으로, 박열의 아내로 잘 알려져 있다. 그와 박열은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당시의 혼란 속에 일본 왕을 폭살하려 했다는 혐의(대역죄 및 폭발물단속벌칙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대역죄의 법정형은 미·기수를 불문하고 사형밖에 없었다. 일본 법원은 가네코 후미코를 전향시키려 했지만 그는 이 시도에 넘어가지 않고 사형 선고를 받아들였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기 7년 동안을 식민지 조선에서 보냈다. 복잡한 가정 상황 탓에 무적자로 태어났고, 조선에선 친척들에게 학대를 당했다. 그러면서 피지배층을 힘들게 하는 제국주의의 구조에 눈을 떴고 그 핵심에는 천황제가 있다고 봤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를 쓴 박열을 평소 동경하다가 1922년 일본에서 박열과 조우하고 운명적 동거를 시작했다. 그들은 감옥에 각각 수감돼 사형 선고 3일 전 법적 혼인 신고를 마쳤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가네코는 1926년 7월 옥중 사망한다.
가네코는 박열의 연인으로 언급되곤 한다. 그러다보니 둘의 사상이 겹쳐진다거나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따랐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가네코는 자신이 조선인이 아니라는 점에서 박열과는 출발점이 다르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의 이념에 동화돼서가 아니라 그와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서 동반자가 됐다는 것이다. <나는 나: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에는 그러한 감정이 서술돼 있다. 가네코는 박열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저자임을 알게 된 순간 “내가 찾고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그것이 그의 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자신에게 의심을 가졌던 바로 그때 끝까지 자신을 추구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박열과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겼을는지도 모른다. 박열과 나는 함께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생활이 아니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생활이었다.” - 위의 책 중에서
그가 걸어온 독자적인 반제국주의·항일 활동은 사후에 인정받았다. 한국 정부는 2018년 가네코 후미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독립유공자로 서훈받은 일본인은 그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다.
이 글에서 소개한 여성들은 어찌 보면 시대를 많이 앞서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성취에 관한 평가는 다를지 몰라도, 그 시대에 특출난 인물이었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누군가의 연인으로만 한정짓기에는 무척이나 아깝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각자 고유한 삶을 살았음에도 시대적 배경이 빚어낸 여성의 삶으로서 일종의 대표성과 전형성이 있다는 것이다. 삶의 중요한 시기가 현재진행형인 실존 인물, 충분한 자료 조사나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여성 등은 제외했지만 이 대표성과 전형성의 함의를 확장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 대목에 이르면 ‘지금은 어떤가’란 의문을 피할 수 없다. 연인이나 동반자 관계가 여성에게 드리우는 그림자는 얼마나 옅어졌을까. 남성과 똑같이 교육받고 똑같이 일하다가도 어느 순간 남성의 커리어를 ‘밀어주기로 한’ 여성들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가. 이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의 연인’, ‘○○의 뮤즈’란 수식어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헌신을 밝힐 길이 없었던 여성들, 정당한 주목과 평가를 받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무수히 쌓여 있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2억1000만원의 잔금 때문에 15년 동안 53개의 소송을 벌인 사람이 있다. 일산의 000 아파트 입주자인 이종수씨(66)다.
15년 전 그는 제값 주고 제대로 된 아파트를 제때 받고 싶었던 평범한 입주 예정자였다.
그러나 이 평범한 바람을 위해 시행사, 시공사는 물론 지자체, 은행들, 국세청과도 싸워야 했다.
그들이 법을 어긴 건 아니었다. 시행사는 과대광고를 했을 뿐 계약은 ‘유효’했다. 시공사는 부실하게 공사했지만 사용승인은 받았다. 지자체는 합법적인 ‘임시’ 사용승인 조치를 한 것이고, 은행은 빌려준 돈을 받으려 했을 뿐이다. 국세청의 세금 부과는 국가 운영을 위한 직무다.
그런데 그 ‘합법’들이 모이자 분양 사업의 모든 리스크를 입주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사업은 그들이 했는데 잘못되면 책임은 소비자가 지게 된 것이다.
이상한 ‘합법’에 맞서 그는 ‘법대로’ 투쟁했다. 직장을 잃고 사업을 접고 폐암에 걸려가며 15년 만에 권리를 되찾았다. 입주자가 분양 시스템에 맞서 이긴 “사실상 최초”이다.
그가 ‘2억여 원에 목숨 건 과정’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분양 시장이 어떻게, 그리고 왜 ‘합법적’으로 기울어지는지 살폈다. ‘부동산 공화국’의 진짜 수혜자는 누구이고 피해자는 누구인지도 추적했다.
그가 낸 책 <집으로 가는 먼 길>과 인터뷰, 5박스 분량의 판결문과 소장, 5박스 분량의 기록(내용증명, 최고장, 준비서면, 파산관재인 보고서, 계약서, 합의서, 의견서 등), 전문가 취재 등을 바탕으로 했다.
■아차 속았다…그런데 반품은 불가?
그가 분양 계약을 체결한 건 아파트 입지 근처에 서울을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고속화도로 진입로가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라는 광고 때문이었다. 영어 학교가 단지 내에 세워질 것이라는 시행사의 홍보도 컸다. 그래서 주변 시세보다 2배 가까운 분양가를 감수했다.
6차 중도금까지, 대금의 70%를 냈을 때 이 모두가 거짓이라는 걸 알았다. 진입로는 이미 2년 전 계획이 취소됐고, 영어 학교는 애초부터 학원법 위반 사항이었다. ‘속았다’는 생각에 계약을 물리려 했다.
사실상 불가능했다. 계약을 무효로 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받으려면 계약을 ‘해제’하거나 ‘취소’를 해야 한다.
‘해제’는 유효한 계약을 나중에 없애는 것이다. 기한까지 상대가 계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통상 ‘해제권’이 생긴다. 즉 입주예정일(아파트 제공 기한)이 3개월 이상 지날 때까지 사용승인(아파트 제공 이행)이 나지 않는 경우에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기한(입주 예정일) 전, 즉 공사 중인 상태에서 해제가 가능한 건 극히 예외적인 경우뿐이다.
그런데 ‘입주예정일이 3개월 이상 지날 때까지 사용승인이 나지 않는 경우’가 흔할까? 그렇지 않다. 대규모 계약해제로 분양 사업 자체가 무너지는 건 지자체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용승인을 내주는 편이다. 이씨는 “아파트도 심각한 하자가 무더기로 발생했지만 입주 예정자들의 준공허가 반대 집회를 피해, 기습적으로 임시 사용승인이 이뤄졌다”고 했다.
‘취소’는 애초 계약 자체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입주 예정일 전에도 가능하다. 하지만 ‘중대한 문제’란 ‘애초 계약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라야 한다. 더구나 진입로나 영어학교는 광고전단에만 있을 뿐 계약서엔 명시되지 않았다. 법원은 대개 “그 조건들이 없었다면 분양 계약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곤 한다.
법은 ‘사적 자치’를 존중한다. 즉 “약속은 ‘중대한 흠’이 없는 이상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무르기’가 어려웠다.
■물릴 수 없다면 값이라도 못 깎나?
과대광고였으니 분양가라도 낮출 수는 없을까? 계약 변경은 계약 당사자 쌍방이 동의해야 한다. 상대 당사자인 시행사가 동의해줄 리 없다. 그래서 대개 잔금 납부를 거부하는 식으로 대항하는 입주자들이 많다. 잘 안 통한다.
잔금은 시행사가 아파트를 사실상 넘겨주는 날, 즉 입주예정일(예정일 이후에 준공이 날 경우 준공 시점)에 맞춰 내야 한다. ‘물건이랑 대금을 동시에 교환’하는 것이다. 만약 안 내면 연체가 된다. 이게 시행사의 무기가 된다. 이씨 역시 잔금 거부 투쟁에 나섰지만 시행사로부터 ‘연 16.5% 연체 이자를 부과하고 연체 사실을 금융기관에 통보해 신용 상태를 떨어뜨리겠다’는 경고장을 받았다.
보통 이 단계에서 입주자들은 항복한다. 그러나 이씨는 달랐다. 잔금을 ‘합법적’으로 안 내고 버틸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는 앞서 입주자들을 규합해 시행사를 상대로 과대광고, 공사 지연, 공사하자 등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이권 다툼을 하면서 공사가 12개월이나 중단됐고, 입주예정일까지 급하게 공사를 마무리하느라 하자도 대거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손해배상금이 잔금보다 많으니 잔금을 낼 필요가 없다”며 별도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법원은 소송이 제기되면 양측 주장의 진위를 가려야 한다. 따라서 시행사의 ‘연체’ 주장 역시 판결 전까지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주장에 불과했다.
결국 ‘주장’을 근거로 연체이자 부과와 연체 사실 통보 등 현실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논리가 가능해졌다. 즉 ‘집행정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행사의 압박 카드가 무력화됐다.
이는 다음 승리의 발판이 됐다.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이 끝날 때까지 입주자들은 마음 놓고 잔금을 안 낼 수 있게 됐다. 잔금이 안 들어오니 시행사는 은행에서 빌린 사업자금을 갚을 수가 없게 됐다. 변제 기한은 다가오고 부도 위험이 코앞에 닥치자 시행사는 꼬리를 내렸다.
만약 입주자들이 잔금을 내버렸다면 하자 보수의 요구를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받을 돈 다 받았으니, 하자보증보험 유효 기간만 버티면 될 일이니까.
관련 소송을 다수 진행한 이세찬 변호사(민사·건축법 전문)는 “시행사 측이 관계자를 입주자로 둔갑 시켜 입주자들을 갈라치기하거나 집행부를 차지한 뒤 무대응으로 일관하며 시간을 끄는 사례를 적잖이 봐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씨의 아파트 시행사는 부도를 피하려 입주자들의 하자 보수 요구 등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가 점차 집으로써의 모습을 갖춰갔다.
■특수목적법인(SPC)의 정체
그런데 수조 원 규모의 분양 사업을 하던 시행사가 왜 잔금 몇 푼 못 받는다고 부도 위기에 몰렸을까.
상당수 시행사는 자본금 수억 원 수준의 ‘1회용 법인’인 특수목적법인(SPC)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씨 아파트 시행사의 자본금도 3억원에 불과했다.
건설사들은 별도 SPC를 세워 사업을 맡기고, SPC는 은행에서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을 받아 공사를 진행한다. 사업이 실패하면 SPC만 파산하고, 모기업은 출자금만 잃으면 된다. 법인은 ‘별도의 인격체’라 모기업은 별도 법인인 SPC의 빚을 대신 갚을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즉 ‘사업 리스크 회피’에 최적화된 사업 모델인 셈이다.
문제는 자본금이 적은 SPC는 입주자들의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은행 빚을 갚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씨의 사례처럼 입주자들이 잔금 납부를 거부하면 현금 흐름이 끊기고, 대출금을 못 갚은 시행사는 부도 위기에 몰린다.
실제로 이씨 아파트 시행사도 입주자들에게 “분양가의 7% 정도만 내면 소유권을 넘기겠다”는 합의서까지 써줬다.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더 강한 상대를 불러냈다
■ 은행은 단지 빌려준 돈을 잘 받으려 했을 뿐인데…
그러나 이 ‘입주확인서’는 무용지물이 됐다. 시행사가 아파트 소유권을 입주자에게 넘기는 것에 은행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은행은 시행사에 빌려준 돈을 못 돌려받을 경우 시행사의 재산 즉 지어놓은 아파트를 강제로 팔아, 그 돈에서 대출금을 회수해간다.
그러려면 아파트가 입주자 소유로 넘어가면 안 된다. 돈을 빌려준 은행은 돈을 빌려 간 시행사 즉 채무자의 재산만을 강제처분할 수 있다. 채무자가 아닌 입주자에게 아파트의 소유권이 넘어가 버리면 손을 댈 수가 없게 된다.
이 변호사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경우 은행이 시행사에 돈을 빌려줄 당시에는 실재하는 담보(건물)가 없어 돈을 떼일 위험이 있다”며 “이 때문에 앞으로 지어질 건물의 소유권을 은행의 동의 없이 입주자에게 넘기지 못하게 하는 조건을 넣어 ‘담보신탁 계약’을 해놓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은행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파산 신청까지 했다. 파산절차에 돌입하면 시행사의 모든 재산은 처분이 금지된다. 아파트 소유권이 입주자에게 넘어가는 것 역시 금지된다.
은행은 예금자 보호를 위해 대출해 준 돈을 성실하게 회수해야 한다. 그리고 이씨의 사례에서도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택했다.
비록 그게 입주자들을 ‘깡통 차게 만드는 결과’를 부르더라도 말이다.
■파산제도의 역설
아파트가 강제처분 돼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면 입주자들은 아파트를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럼 시행사는 그간 입주자들이 낸 계약금과 중도금이라도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파산에 돌입하면 그게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는 시행사에 돈을 받아낼 방법은 지어놓은 아파트를 강제로 팔아서 그 돈으로 빚을 받아 가는 것뿐이다. 이는 은행뿐만이 아니다. 입주자도 마찬가지다.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받아야 할 채권자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입주자가 은행보다 뒷전인 채권자라는 데에 있다. 은행은 시행사에 돈을 빌려줄 당시 ‘우선수익권’, 즉 다른 빚쟁이들보다 ‘먼저 빚 받을 권리’를 확보해 놓는다.
그래서 아파트를 강제처분 한 돈에서 대출금을 먼저 회수해 간다. 그 후 입주자들의 차례다. 그러나 대출금 반환으로 돈이 대부분 빠져나간 뒤라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돌려줄 돈은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경매에서 아파트는 ‘은행 대출금 돌려주고 나면 거의 남는 게 없을 정도의 가격’에 팔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입주자들은 아파트도 못 얻고, 계약금이나 중도금도 못 돌려받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파산제도는 보통 약자인 채무자를 위해 강자인 채권자의 돈 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제도다. 그런데 채무자 자리에 ‘시행사’가 들어가고 채권자 자리에 ‘입주자’가 들어가게 되면서 이율배반이 벌어진 셈이다.
■2억원 덜 내려고 시작했다… 다 날릴 판
집도 잃고 돈도 못 받게 생긴 입주자들에게 파산관재인은 “아직 내지 않은 잔금을 내라”는 소송까지 냈다. 10세대 단위로 무려 47개에 달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회사가 파산 절차에 들어가면 그 회사는 자기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지 못한다. 그 재산은 빚 갚을 돈을 마련하는 데 쓰여야 하기 때문이다.
빚 갚을 돈을 마련하는 건 법원이 임명한 파산관재인이 맡는다. 회사의 부동산을 팔고,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받아야 할 돈(채권)도 대신 받아낸다. 그래야 파산한 회사에 돈을 빌려줬던 이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산한 회사(시행사)가 입주자에게 받아야 했을 돈, 즉 잔금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이씨는 또 한 번 ‘잔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앞서 첫 번째의 경우는 ‘손해배상금과 맞바꾸자’는 취지였지만, 이번에는 ‘계약이 이미 해제됐으니 잔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취지였다.
이씨는 앞서 파산 직전의 시행사에 ‘계약해제 확인서’를 받아놨었다. 은행들의 파산 신청 철회를 압박하는 입주자 시위를 열어주는 조건으로, 파산이 불가피해질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얻어낸 것이다.
‘신의 한 수’였다. 이씨와 입주자들은 이를 근거로 ‘계약이 사실 해제된 상태’라는 주장을 했다. ‘계약해제 확인 소송’을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낸 것이다.
‘계약해제 확인 소송’이 승소하면서 “계약이 없어졌다. 그러니 잔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항변이 가능해졌다. 이를 무기로 파산관재인이 걸어온 잔금청구 소송 47건에 맞섰다.
기사회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했다. 계약이 해제됐으니 입주자는 아파트를 돌려줘야 한다. 즉 아파트를 못 얻는다. 대신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받아야 하지만 은행이 먼저 대출금을 가져가고 나면 입주자가 돌려받을 돈은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큰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집도 잃고 돈도 못 돌려받는 상황은 여전했다.
■국세청,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다
그 와중에 갑자기 국세청이 아파트 전체를 압류했다. 아파트 전체에 종부세 74억원을 부과하면서, 세금을 못 받으면 아파트를 강제처분해 세금 대신 가져가려 조처를 한 것이다.
원래 분양이 안 된 아파트엔 5년간은 종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안 그러면 아직 아파트 전체를 갖고 있는 사업체가 수백 채의 아파트에 대한 종부세를 해마다 물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끝도 없는 소송전으로 5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아파트를 국세청이 압류하면서 이젠 은행들이 입주자에게 아파트 소유권을 넘겨주겠다고 동의를 해주더라도 입주자들은 아파트를 받을 수가 없게 돼버렸다. 압류된 재산은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종부세를 내야 압류를 풀 수 있다.
종부세는 1년 단위로 부과된다. 해가 지날수록 내야 할 세금이 두 배, 세 배, 네 배가 된다는 얘기다.
빨리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누가 내야 하나? 은행은 돈만 빌려줬다. 입주자는 아직 아파트 소유자가 아니다. 신탁사는 시행사로부터 아파트 소유권을 맡아 관리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시행사는 파산했다. 이 역시 결국 아파트를 판 돈에서 부담해야 할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이는 은행마저도 대출금을 못 돌려받을 상황이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파트를 팔아도 그 돈에서 국세청의 세금이 먼저 빠져나간다. 조세채권은 일반채권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결국 종부세 몇년치가 빠져나가고 나면 입주자들의 계약금·중도금은 물론 은행 대출금을 돌려줄 돈 조차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 이씨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종부세가 또 부과되기 전에 파산한 회사의 남은 재산으로 종부세를 납부해 아파트에 대한 압류를 풀고, 입주자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받기를 포기하는 대신, 아파트를 넘겨받는 방법’ 뿐이었다.
그러나 은행들은 이 제안에 시큰둥했다. 어차피 대출금을 못 돌려받는 것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아파트 쟁탈전’서 ‘다윗’의 기적
이씨는 파산 절차가 시작된 이후의 모든 기록을 뒤졌다. 그러다 파산관재인이 당초 시행사가 시공사에서 받아냈어야 할 공사 지연 보상금을 받아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배임 소지가 있는 행위였다. 파산관재인은 파산회사의 채권을 성실히 회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입주자들에겐 잔금을 받아내려 47개의 소송까지 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시공사에 받아내야 할 돈에 대해서는 회수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를 파산재판부에 호소했다. 파산관재인에 대한 지휘권을 가진 파산재판부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절규’ 했다.
15년간 투쟁 끝에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입주자들의 처지도 호소했다.
파산재판부가 중재에 나섰다. ‘파산 회사의 남은 재산으로 종부세를 내서 아파트 압류를 풀고, 그래서 입주자에게 소유권을 넘긴다. 대신 입주자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받지 않는다. 미납된 잔금을 내지 않는 대신 손해배상금을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그렇게 이씨와 입주자들은 잔금 납부 없이 하자가 보수된 아파트를 얻게 되었다. 15년의 싸움은 그렇게 입주자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비록 상처뿐일지라도...
박준선 변호사는 “이 사람들은 강남 한복판의 고가 아파트를 산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강북도 아닌 경기도 쪽에 내 집 한 채 마련해보겠다고 평생 모은 월급, 논밭을 판 돈 등에 감당하기 버거운 대출까지 쏟아부었다”고 했다.
■사업자가 아닌 소비자가 ‘사업 리스크’를 진다
그와 입주자들은 은행, 국세청이 벌이던 ‘아파트 쟁탈전’에 무모하게 뛰어든 셈이었다.
모기업은 시행사로 내세울 별도 법인, 즉 SPC를 설립하면서 자본금을 많이 투여하지 않는다. 파산하면 사라질 테니까. 그래서 시행사(SPC)는 입주예정자들에게 받는 대금으로 빚을 갚아나갈 수밖에 없고, 이 현금 흐름이 막히는 순간 파산하곤 한다.
이때부터 ‘아파트 쟁탈전’이 시작된다. 돈 없는 시행사에게 돈이 될만한 건 지어놓은 아파트밖에 없다. 은행은 빌려준 돈을 받으려고, 국세청은 미납세금을 받아내려고 아파트를 압류, 즉 붙잡는다.
미분양 사태의 경우 대개 은행이 손실을 떠안는다. 경매에 넘겨도 안 팔리긴 마찬가지라 빚을 못 돌려받고, 은행에 부실이 초래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은행 부실 우려가 커졌다는 보도가 종종 나오는 이유다.
팔리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이씨처럼 입주예정자들이 ‘쟁탈전’에 끼게 된다.
은행은 ‘우선수익권’을 통해 입주 예정자들보다 먼저 빚을 받아간다. 국세청은 국가 운영자금이라는 세금의 공공성 때문에 ‘조세채권이 일반채권에 우선한다’는 법 조항을 무기로 삼는다.
그러나 입주 예정자들은 아무런 무기도, 장치도 없다. 분양대금의 70%에 달하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받을 권리, 즉 가장 많은 채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은행의 대출채권과 국세청의 조세채권보다 순위가 밀린다. 그래서 아파트도 잃고 이미 낸 돈도 못 돌려받곤 한다.
사업이 실패하면 사업자가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바닥에선 사업이 망하면 소비자가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인 셈이다.
■‘이종수’라서 가능했는데…그게 문제다
이씨는 “한국전쟁 이후 사람들이 살 집을 대량으로 공급해야 했던 시절, 정부는 사업자들이 주택 건설에 뛰어들게 하려고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1회용 법인을 이용한 선분양제라는 세계 유례를 찾기 힘든 제도가 등장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구시대의 제도가 이제는 건설사들이 빚잔치를 벌여 무모한 건설 사업을 벌이고도 책임은 지지 않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을 하는 토대로 악용된다”며 “그 리스크를 애먼 소비자 즉 입주자들이 떠안고 있다”고 했다.
그는 후분양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그 전이라도 지자체의 책임 있는 사업인가와 준공검사, 은행의 무분별한 PF 대출 규제, SPC를 이용한 리스크 전가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때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박 변호사는 “낡은 제도가 존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부동산 개발을 경기 부양책으로 삼던 역대 정부의 책임도 있다”며 “이는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초래했다”고 했다. 이어 “책임이 있는 곳에 품질이 있다”며 “부양책이나 투기수단으로 악용되는 제도가 아닌, 소비자들이 살 집을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국토교통부 등 주무 부처와 국회 등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입주자가 분양 시스템에 맞서 이긴 건 알려진 바로는 이씨의 사례가 사실상 최초이다. 의미 있다. 그러나 마지막 사례일 것이라는 점은 씁쓸하다.
이종수가 아니면 불가능할 테니까. 이종수가 아닌 사람도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종수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아래 기사를 참조하세요.
15년간 53개의 소송···분양시스템을 “최초”로 이긴 입주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수술이 필요한 외국인보호소 외국인들이 외부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 11일 법무부 장관에게 이 같은 내용의 권고를 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권고는 지난 1월 접수된 2건의 진정을 심의한 결과다. 인권위에 따르면 외국인보호소에 입소한 A씨는 발가락과 손가락을 다쳐 전문의로부터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B씨도 무릎 부상으로 외부 병원에서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필요한 의료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인권위에 직접 진정을 제기했다.
보호소 측은 외부 진료의 경우 상처 정도와 도주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허가하고 있으며, 의무과에서 약물 처방 등 보존적 치료를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해자들이 보호시설 입소 후 전문의로부터 내측 반달연골 손상과 다발골절 등으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절한 수술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인권위는 또 “외국인 보호시설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강제퇴거 대상자로 의심되거나 도주 우려가 있는 외국인을 수용하는 기관”이라며 “독립된 사법부의 판단 없이 행정기관의 결정만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호 제도의 취지에 맞게 보호외국인들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보호외국인들이 외부 병원에서 적절한 수술적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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